제이콥 새비지의 에세이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부분 중 하나는 많은 밀레니얼 남성들이 특히 기술 및 온라인 분야, 예를 들어 서브스택, 암호화폐, 팟캐스팅 등에서 일자리와 창의적인 활동 기회를 찾았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 목록에 개인 투자도 추가하고 싶습니다. 저자 본인도 책상에 앉아 암표를 팔아 아이들을 부양합니다. 온라인에서 가명으로 하는 일이 생계비를 벌어주는 것이죠. 인터넷의 이런 부분들이 기술 업계에서 가장 심하게 비난받는 분야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팟캐스트는 더 이상 필요 없어." "인플루언서와 AI는 쓰레기야." "집 지하실에서 인터넷이나 하는 놈들." "익명으로 X를 하는 사람들." 가장 비난받는 행태들은 시작하는 데 가장 적은 자본과 인맥이 필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되는 유일한 피난처는 바로 이러한 행태들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새로웠고, 진입 장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익명으로 활동하는 온라인 세계는 여전히 악마화되고 있습니다. 일부 고위 성직자들이 이러한 인터넷 공간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거나 익명성이 제공하는 보호 기능을 없애려 할 때, 우리는 훨씬 더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익명성은 많은 이들에게 구명정이었고, 앞으로도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물리적인 세계에서 무언가를 하거나, '어렵거나' '잘 알려진' 또는 '인가받은' 일을 할 때만 창작 활동이 중요하다는 식의 도덕적인 잣대는, 저는 그런 생각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몸에 얽매여 있으면 언제든 파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아무도 당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복 걱정 없이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고,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건축 그 자체는 고귀하고 선한 것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건축은 정치 철학입니다. 새롭거나 기이하거나 익명의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말은 무시하세요. 그들이 당신이 그런 것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한 세대가 지나서야 명확해질지도 모릅니다.
